창이공항 T5가 다시 쓰는 공항 리테일의 문법

2026-06-30 9분·Edited by AI

Overview

싱가포르 창이공항이 2025년 5월 제5터미널(T5) 착공에 들어갔다. 2030년대 중반 완공을 목표로 하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터미널 증설이 아니다. KPF·헤더윅 스튜디오가 설계한 T5는 공항을 "A Cluster of Neighbourhoods"로 재정의하며, 쇼핑·F&B·문화가 융합된 차세대 공항 리테일 모델을 예고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2029년까지 창이 사업권 연장, 신라의 화장품·향수 채널 확대와 맞물려 창이공항은 T5 시대를 향한 포지셔닝 전쟁을 이미 시작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 T5 착공식이 열린 2025년 5월, 리 시엔룽 전 총리는 단상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T5는 창이공항의 다음 챕터이자, 싱가포르 항공 허브 전략의 미래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숫자가 있다. 완공 후 연간 처리 능력 5천만 명 — 현재 창이공항 전체 4개 터미널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가 단일 터미널 하나에 담긴다.

"A Cluster of Neighbourhoods" — KPF·헤더윅의 파격 설계

T5의 첫 번째 충격은 건축 설계에서 온다. 창이공항그룹(CAG)은 KPF와 토마스 헤더윅의 헤더윅 스튜디오를 공동 설계사로 선정했다. 두 사무소가 내놓은 콘셉트는 명확하다. "공항을 도시처럼 만든다(Airport as a City)."

기존 공항 설계의 문법은 효율이었다. 게이트까지 최단 동선, 균일한 조명, 반복되는 쇼핑 스트립. T5는 이 문법을 깼다. '루프 리프(Roof Leaves)'라 불리는 곡선형 지붕들이 다양한 높이로 겹쳐지며 공간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자연광이 각도에 따라 달리 스며드는 구조다. 각 존(Zone)은 독립된 Neighbourhood 컨셉으로 설계돼 쇼핑, 식음, 휴식, 문화의 경험이 구역별로 차별화된다.

리테일 공간 설계는 DP 아키텍츠가 맡았다. 창이공항그룹이 T5 상업공간 설계사로 DP 아키텍츠를 별도 선정했다는 것은, 리테일이 T5에서 단순한 수익원이 아닌 공간 경험의 핵심 레이어로 기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Neighbourhood 설계 철학이란

기존 대형 공항 터미널은 단일 거대 지붕 아래 균질한 공간으로 설계됐다. 게이트까지 최단 동선, 어디서나 똑같은 조명·높이·분위기. 효율은 높지만, 사람이 오래 머물고 싶은 환경이 아니다.

T5의 해법은 지붕을 '루프 리프(Roof Leaves)' — 여러 개의 곡선형 잎사귀 형태로 겹쳐 쌓는 것이다. 각 루프 리프는 높이와 각도가 다르고, 자연광이 구역마다 다른 강도로 스며든다. 하나의 거대한 창고가 아니라, 작은 Neighbourhood들이 연속으로 이어진 감각을 만들어낸다.

각 Neighbourhood는 조명 환경, 공간 높이, 식물 밀도, 용도 조합이 다르게 설계된다.

  • 출발 커브사이드: 곡선 지붕이 빛을 역동적으로 반사해 '비행의 설렘'을 공간으로 표현
  • 수하물 클레임 홀: 수직 정원이 벽면을 채우며 싱가포르 도착의 '따뜻한 환영'을 연출
  • 리테일·콩코스 광장: 쇼핑·식음·엔터테인먼트가 자연스럽게 얽히는 대형 오픈 공간

이 구조는 리테일에 직접 영향을 준다. 아늑한 Neighbourhood엔 프리미엄 부티크, 광장형 Neighbourhood엔 대중 브랜드와 F&B — 럭셔리와 식음이 충돌하는 문제를 설계 단계에서 방지한다. 쉽게 말하면, 런던 코벤트 가든이나 도쿄 다이칸야마처럼 목적 없이 걸어도 자연스럽게 시간을 쓰게 되는 Neighbourhood 구조를 공항 안에 구현하는 실험이다.

창이 이스트 — 1,080헥타르의 항공 도시

T5를 이해하려면 그 배경인 창이 이스트(Changi East) 개발계획을 함께 봐야 한다. T5는 총 1,080헥타르 규모의 창이 이스트 지구 중심에 위치한다. 이 지구는 항공, 물류, 도시 생활 인프라를 하나로 통합하는 복합 개발이다.

화물터미널, 항공정비(MRO) 시설, 에어로폴리스 비즈니스 파크가 T5와 자동화 피플무버(APM)로 연결된다. 단순히 여객을 처리하는 공항이 아니라, 항공산업 생태계 전체를 품는 복합 허브가 목표다. 공항 리테일 관점에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존에 쇼핑객이 '여객'뿐이었다면, 창이 이스트 완성 후에는 비즈니스 파크 종사자, MRO 인력, 물류 거점 방문자까지 상업 공간의 잠재 고객이 된다.

롯데면세점 2029년 연장 — T5 이전까지의 교두보

T5가 2030년대 중반 완공을 앞두고, 현재 창이공항 면세 채널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이 나왔다. 창이공항그룹은 2026년 6월, 롯데트래블리테일과의 주류·담배 면세 콘세션을 2029년 6월까지 3년 연장했다.

숫자로 보면: 4개 터미널, 18개 매장, 8,600㎡, 430개 브랜드. 2025년 한 해만 창이공항을 통과한 여객이 6,770만 명이다. 롯데는 이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주류·담배 단일 카테고리로 소화하는 위치에 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 롯데면세점
Lotte Duty Free, Singapore Changi Airport

계약 연장과 함께 주목할 것은 상품 전략의 진화다. T2·T3 중앙 매장에는 로봇 바텐더, 대형 LED 벽면, 위스키 시음 바가 설치됐다. 카발란 증류소, 브루이클라디, 포 필라스 진 등 글로벌 증류소와의 한정판 콜라보가 이어지고, 래플스 호텔의 싱가포르 슬링 RTD 제품도 라인업에 추가됐다. 면세점을 '구매하는 곳'이 아닌 '경험하는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방향이다. T5 시대를 대비한 사전 포지셔닝으로 읽힌다.

신라면세점의 전략 — 화장품·향수 채널 집중

롯데가 주류·담배를 장악하는 동안, 신라면세점은 창이공항 4개 터미널 화장품·향수 채널을 운영한다. K뷰티의 글로벌 수요가 창이 화장품 면세 매출과 직결되는 구조다.

싱가포르 창이공항 신라면세점
The Shilla Duty Free, Singapore Changi Airport

신라 입장에서 T5는 중요한 변수다. 신규 터미널의 화장품·향수 콘세션이 어떻게 재배분될 것인지, T5 리테일 설계 단계에서 어떤 포지션을 선점하느냐가 향후 10년 창이 수익 구조를 결정하게 된다. 현재의 콘세션 계약 주기와 T5 완공 시점이 맞닿는 2030년대 중반, 한국 면세업계는 창이공항에서 새로운 콘세션 경쟁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인천공항과의 비교 — 무엇이 다른가

인천공항 T2의 럭셔리 부티크·F&B 공존 실험과 창이공항 T5 전략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면서도 접근 방식이 다르다.

인천공항은 기존 터미널 안에서 '명품+F&B'를 결합하는 복합화를 시도했다. 반면 T5는 처음부터 설계 단계에서 Neighbourhood 컨셉을 심는다. 공간을 용도별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존을 중심으로 쇼핑·식음·문화를 유기적으로 묶는 방식이다. 럭셔리 브랜드와 F&B의 충돌 같은 문제가 발생한 인천과 달리, T5는 구역별 Neighbourhood 특성을 통해 이 충돌을 설계 단계에서 방지하는 접근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지속가능성의 통합 수준이다. T5는 그린마크 플래티넘 초저에너지 건물 인증을 목표로 하며, 싱가포르 최대 규모의 옥상 태양광 시스템을 갖춘다. 이 에너지가 공항 내 상업시설 운영에도 활용되는 구조다. 럭셔리 리테일에서 ESG 요건이 강화되는 흐름과 정확히 맞닿는다.

실무 시사점

  • 면세 오퍼레이터: T5 콘세션 입찰은 2030년대 초에 본격화될 전망이다. 지금 CAG와의 관계 형성, 창이 이스트 개발 타임라인 트래킹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 럭셔리 브랜드: T5 리테일 설계사로 선정된 DP 아키텍츠와의 초기 대화가 매장 위치와 규모 결정에 영향을 준다. 공간 배분이 확정되기 전 단계의 접근이 유효하다
  • K뷰티·K패션: 신라의 화장품 채널이 T5에서도 유지·확장될 경우, 창이를 통한 아시아 여행객 대상 K뷰티 노출 효과는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커진다. T5 입점 전략을 신라와 함께 기획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 롯데면세점: 2029년 콘세션 만료 전 T5 방향성을 반영한 재계약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단순 연장이 아니라 T5 채널 포함 여부가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결론

창이공항 T5는 공항 리테일 역사에서 전환점이 될 프로젝트다. '효율'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로 설계된 기존 공항에서 벗어나, '경험'을 설계의 출발점에 둔 공항이 완성된다. 2030년대 중반, T5가 문을 열 때 창이공항의 연간 처리 여객은 1억 명을 넘어선다. 그 1억 명이 통과하는 상업 공간의 콘세션을 누가 쥐느냐 — 그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RIT's Insights

T5의 진짜 의미는 Neighbourhood 설계 철학에 있다. 공간을 용도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존을 중심으로 쇼핑·식음·문화를 유기적으로 묶는 이 방식은, 럭셔리와 F&B의 충돌 문제를 설계 단계에서 해결한다. 면세 업계 관점에서 T5의 핵심 변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창이 이스트 완성 이후 넓어지는 고객 저변(여객 이외의 비즈니스·물류 인력), 다른 하나는 T5 콘세션 재배분이 가져올 시장 재편이다. 2029년 롯데 계약 만료와 T5 개장이 맞닿는 시점이 한국 면세업계 창이 전략의 진짜 분수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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